굿모닝입니다! 뉴스레터 발송시스템 오류로 다 써놓은 레터 못 보내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네요. 늦었으니까 얼른 가볼게요. 딥다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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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고 반짝이는 돌에 사람들은 계속 열광할 수 있을까. 드비어스그룹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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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보츠와나 광산부터 뉴욕 5번가 보석점까지. 연간 100조원 규모로 반짝이던 산업이 빛을 잃어갑니다. 바로 다이아몬드 이야기이죠. 다이아몬드 가격이 급락하면서 업계 최강자 드비어스가 매물로 나오고, 인도 공장이 줄줄이 문 닫고, 보츠와나 정권이 58년 만에 교체되기까지 했는데요.
수백 년 동안 호황과 불황의 파고를 넘겨온 다이아몬드. 하지만 실험실 다이아몬드라는 쌍둥이로 인해 전례 없는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영원하다는 약속이 무색해진 다이아몬드 산업을 들여다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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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적으로는 100% 탄소, 상업적으로는 100% 마케팅. 다이아몬드의 진짜 정체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이거죠. 20세기 초반까지 초부유층이나 끼는 호화사치품이던 다이아몬드 반지를 진정한 사랑의 상징으로 둔갑시킨 건 드비어스의 이 유명한 광고문구였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A Diamond is Forever)”.
1947년 미국 광고대행사가 만든 이 문구를 내세운 대대적인 마케팅 공세는 적중했죠. ‘결혼반지는 다이아몬드’라는 인식을 대중에 심어주는 데 성공했고요. 이때부터 청혼할 땐 루비나 사파이어가 아닌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미는 게 공식처럼 자리 잡습니다. 미국 매체 애드에이지(AdAge)는 1999년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를 20세기 최고의 슬로건으로 꼽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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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드비어스의 광고문구는 다이아몬드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새롭게 정립했다. 마케팅의 빛나는 승리 사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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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천재적인 마케팅의 주인공이자, 세계 최대(금액 기준) 다이아몬드 생산업체인 드비어스(De Beers). 얼마 전 지난해 실적을 공개했는데 많이 어렵습니다. 매출(33억 달러)이 23%나 줄었고요. 재고물량만 20억 달러어치가 쌓여, 2008년 금융위기 수준입니다. 막대한 재고를 털기 위해 콧대 높은 드비어스가 지난해 12월 이례적으로 원석 가격을 10~15%나 깎았는데요. 블룸버그에 따르면 그런데도 고객들은 비싸다며 거래를 거부했다죠.
모회사 앵글로 아메리칸(Anglo American)은 지난해부터 드비어스에서 발을 빼기 위해 매각을 모색 중인데요. 최근의 손실을 반영해 드비어스 장부가치를 지난해 76억 달러에서 40억 달러로 대폭 낮췄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선 여전히 너무 비싸다는 반응이죠. 사겠다는 곳이 없으면 앵글로 아메리칸은 드비어스 IPO를 추진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산업이 얼마나 빠르게 추락 중인지는 다이아몬드 가격이 잘 보여줍니다. 1캐럿 다이아몬드 가격이 블룸버그 표준 가격 기준으로는 3420달러(약 488만원). 직전 고점인 2022년 5월(6720달러, 960만원)과 비교하면 거의 절반 수준입니다. 반등할 기세 없이 꾸준히 하락 중이죠. 좀처럼 바닥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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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다이아몬드 표준가격 지수의 추이. 2022년 5월을 정점으로 꾸준한 하락세가 이어진다. 현재 가격은 2000년대 들어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블룸버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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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절단·연마의 세계적인 중심지로 통하는 인도 수라트시. 2023년 말 전 세계 최대 규모 사무빌딩으로 기록된 다이아몬드 거래소를 개장하기도 한 ‘다이아몬드 시티’인데요. 지금은 다이아몬드 공장이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이젠 실업자가 넘쳐나는 절망의 도시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18개월 동안 자살한 실직 다이아몬드 노동자만 71명에 달한다는 마음 아픈 뉴스가 이어집니다.
추락하는 다이아몬드는 정권도 갈아치웁니다. 지난해 10월 실시된 보츠와나 총선에선 집권당이 참패해 4위로 주저앉았죠. 1966년 독립 이후 58년간 집권해 온 여당의 굴욕적인 패배이자, 놀라운 정치적 전환점이었는데요. 막대한 다이아몬드 매장량 덕분에 그동안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 살고 안정적인 나라로 꼽히던 보츠와나. 하지만 다이아몬드 시장의 침체로 실업률이 27%로 치솟았고 정권은 심판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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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수라트시의 다이아몬드 연마 공장 노동자들의 모습. 5000개 넘는 다이아몬드 공장에서 약 100만명이 일하던 이 지역은 요즘 심각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다이아본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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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부터 2022년 초, 다이아몬드 시장은 대활황이었습니다. 팬데믹 직후 ‘보복소비’ 열풍이 분 데다, 미뤘던 결혼식이 한꺼번에 열렸기 때문인데요. 돌이켜보면 마지막 불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파티는 끝났고, 남은 건 혼란스러운 잔해들뿐입니다. 사실상 죽어버린 중국 시장, 그리고 천연 다이아몬드의 10분의 1 헐값이 된 실험실 다이아몬드가 그것이죠.
중국 다이아몬드 시장의 붕괴는 놀라운 수준입니다. 다이아몬드 시장 분석가 폴 짐니스키는 중국 수요가 지난해 최대 50%나 줄었을 거라고 분석했죠. 중국은 이전 10년 동안 유지했던 세계 2위 다이아몬드 구매국 지위(1위는 미국)를 지난해 인도에 뺏겼습니다. “중국 시장은 죽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회복이 보이지 않는다”(루카라다이아몬드 CEO인 윌리엄 램)는 한탄이 업계에서 나오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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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부터 10년 넘게 글로벌 다이아몬드 시장의 붐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2013년 1300만건을 넘었던 중국 결혼건수는 지난해 610만건으로 줄어들었고, 다이아몬드에 대한 열기는 빠르게 식었다. 사진은 1월 6일 하얼빈에서 열린 단체 결혼식에 참여한 신랑신부 모습. 신화통신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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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경기 부진과 소비 침체, 그리고 결혼 감소 때문이란 각종 분석이 쏟아집니다. 중국인들이 지갑이 얇아지면서 실속을 챙기게 됐고요. 결혼 건수가 45년 만에 최저(610만6000건)로 떨어진 영향이 컸습니다. 동시에 중국 공산당의 ‘돈자랑 콘텐츠’ 단속도 한몫합니다. 지난해 중국 당국 지시에 따라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부를 과시하고 돈을 숭배하는’ 콘텐츠를 내리고 계정을 폐쇄했죠. 가뜩이나 식어버린 소비심리에 찬물을 끼얹은 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중국 소비자들이 지난 몇 년 동안 다이아몬드값이 떨어지는 걸 봐버렸다는 겁니다. 마치 가격이 급락한 중국 부동산 시장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듯이, 다이아몬드 구매도 피하고 있죠. 전형적으로 버블이 꺼지는 모습인데요. 대신 중국 젊은이들은 이제 가치저장소로서 투자가치가 있는 금을 사는 데 열중한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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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과 불황의 주기는 다이아몬드 시장엔 익숙한 일입니다. 가깝게는 2020년 팬데믹과 2008년 금융위기를 견뎌냈고요. 역사적으론 남아프리카에서 처음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된 1867년 직후, 대공황과 전쟁이 이어진 1930년대의 암울한 시절도 겪었죠. 다이아몬드 가격은 주기적으로 추락했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상승곡선을 그리곤 했습니다. 침체기가 지나고 나면 새로운 부자가 다시 생겨났고,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는 그들에게 매력을 뿜어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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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에서 만든 다이아몬드를 다듬는 모습. 작은 탄소조각을 보석으로 쓸 다이아몬드로 키우는 데 2주 정도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에 상당한 전기가 소모되는데, 보통 1캐럿짜리 원형 다이어를 만드는 데 약 250KWh의 전기를 쓴다. 우리나라 1인 가구 한달 전기사용량과 비슷하다. 라이트박스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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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중국 시장의 붕괴는 명백한 위험이지만,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떠오르는 다른 나라, 예컨대 인도나 아랍에미리트가 그 자리를 메워갈 겁니다. 정작 업계를 짓누르는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죠.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합성(Lab Grown) 다이아몬드의 공습입니다. 이에 대해 뉴욕의 다이아몬드 도매상 마니시 샤는 블룸버그에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 없는 일입니다. 산업 전체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스웨덴 한 실험실에서 다이아몬드를 세계 최초로 합성한 게 1953년. 그 뒤로 수십 년 동안 산업용으로만 쓰였던 실험실 다이아몬드가 기술 발전으로 보석 자리까지 차지하게 된 지는 이제 10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전문가도 눈으로는 뭐가 천연이고 뭐가 합성인지 구별할 수 없죠. 채굴한 원석과 화학성분이나 물리적 특성이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에 ‘가짜’ 다이아몬드가 아닙니다. 단지 자연에선 10억년 이상인 제조기간이 실험실에선 불과 2-3주 만에 된다는 차이이죠.
품질은 같은데 더 싼 다이아몬드. 이 게임체인저에 많은 귀금속 브랜드가 열광했습니다. 심지어 드비어스조차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을 정도였죠. 여전히 천연 다이아몬드만 고집하는 롤렉스 같은 브랜드도 있지만, 브라이틀링 같은 명품시계 브랜드는 이미 합성 다이아몬드로 100% 전환했습니다. 전체 다이아몬드 주얼리 시장에서 합성품의 비중은 2015년만 해도 제로였지만, 이젠 20% 정도 불어났을 걸로 추정됩니다.
물론 다이아몬드가 천연인지 합성인지를 몇초 만에 구분해 내는 장비는 이미 나와 있습니다. 또 아무리 똑같아 보여도 엄연히 다른 제품이긴 하죠. 드비어스의 알 쿡 CEO는 최근 블룸버그TV에 출연해 이렇게 말합니다. “모나리자 포스터를 미술관에 걸어놓고 사람들에게 진짜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진짜가 아니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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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천연 돌과 구분된다 해도, 가격 차이가 한 10배쯤 난다면 소비자엔 매력적인 선택지 아닐까요. 이게 바로 최근 벌어지는 일입니다. 2015년 처음 합성 다이아몬드가 주얼리 시장에 선보였을 땐 천연 제품 가격의 90% 수준이었는데요. 지난 몇 년간 기술 발전과 공급 급증(주로 중국에서)으로 값이 뚝뚝 떨어져 도매가격은 이미 5~10%로 떨어졌습니다. 다만 소매가격은 그 정도까진 아니고 천연산의 4분의 1 정도에 머뭅니다. 소매상이 합성다이아몬드에서 마진을 엄청나게 챙기고 있단 뜻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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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뚝 떨어지는 합성(랩그론) 다이아몬드(줄여서 LGD) 가격 추이. 폴 짐니스키 추정에 따르면 1캐럿 제품 소매 가격이 2025년 1분기엔 1000달러 아래로 떨어지고, 도매 가격은 150달러 밑으로 내려간다. 공급과잉으로 도매가격은 5년 전의 10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지만, 소매가격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하락 중이다. 폴짐니스키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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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저렴한 랩그론 다이아몬드의 공습은 어떤 지각변동을 일으킬까요. 컨설팅기업 매켄지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습니다.
①지금 비슷한 상황이 이어진다면?
합성 다이아몬드가 결국 대세가 될 겁니다. 같은 품질이면 더 싼, 또는 같은 값이면 더 큰 합성 다이아몬드를 대부분이 선택하겠죠. 대신 틈새 고급품 시장은 따로 갈 겁니다. 천연 다이아몬드는 마치 클래식 자동차나 고급 빈티지 아이템 수집 같은 지위가 되는 셈입니다. 드비어스 같은 업체 입장에선 시장이 쪼그라든다는 뜻이니, 상당한 암울한 얘기인데요. 만약 천연 다이아몬드 반지를 이미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되레 흐뭇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걸 잘 간직해두면 대대로 물려줄 가보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②합성 다이아몬드 가격이 훨씬 더 무지막지하게 떨어진다면?
다이아몬드 업계의 유력인사인 라파포트 그룹의 마틴 라파포트 회장은 이코노미스트에 이렇게 말합니다. “실험실 다이아몬드가 캐럿당 10~15달러인 시대가 곧 올 겁니다.” 만약 실험실 다이아몬드가 ‘가짜 다이아몬드’로 불리는 큐빅 지르코니아 가격 수준이 된다면. 이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결혼반지에 다이아몬드를 박는 건 다이아몬드가 비싼 보석으로 보여서잖아요. 그런데 몇만원짜리 싸구려 돌과 누가 봐도 똑같아서 구분이 잘 안 된다면? 아무리 천연산이라고 해도 누가 굳이 비싸게 사서 끼려고 할까요. 매켄지는 이런 시나리오에서는 “모든 다이아몬드는 단순히 유행이 지나고, 매력을 잃고, 더 이상 결혼반지 필수품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루비, 사파이어, 아니면 24K 금이 훨씬 나은 선택이 되겠죠. 다이아몬드의 완전한 몰락일 겁니다.
어느 시나리오가 더 그럴듯해 보이시나요? 최근 이코노미스트 칼럼은 두 번째 시나리오를 지지하며 이렇게 조언합니다. “다이아몬드로 청혼하지 마세요.” 역시 영원한 건 없는 걸까요. By.딥다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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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천재적인 세기의 마케팅도 파괴적 혁신 앞에선 무용지물인 걸까요. 그 혁신이 기존 제품뿐만 아니라 아예 시장 자체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니, 흥미롭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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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레터는 반짝이는 돌에 대한 제 물욕을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용합니다. 레터 쓰느라 다이아몬드로 검색을 많이 했더니, 제 SNS가 다이아몬드 주얼리 광고로 도배가 됐는데요. 영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고 있습니다. 😅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금요일에 다시 찾아올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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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한애란
재미있거나 유익하거나.
읽을 만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23년차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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