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시 때문에 잠을 설쳤지만. 함께 가보시죠. 딥다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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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9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군사 퍼레이드에 참여해 행진 중인 러시아 군인들. 신화통신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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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경제성장률이 4.1%나 되고, 실업률은 2.4%에 불과합니다. 임금이 뛰고 소비가 늘어나 경제가 호황이다 못해 과열 양상이죠. 어느 나라 얘기일까요. 바로 러시아입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벌인 지 만 3년여. 러시아 경제는 침체 위기를 가볍게 뛰어넘어 진군 중입니다. 겉보기 수치로는 서방의 제재에도 끄떡없는데요. 러시아 경제는 왜 호황을 누리고 있고, 이 호황은 얼마나 더 이어질까요. 오늘은 러시아가 보여주는 전쟁 경제학을 들여다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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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주가지수인 RTSI. 한 달 만에 15%, 석 달 전과 비교하면 39%나 뛰었습니다. 특히 미국과 러시아가 리야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을 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13일 하루에만 지수가 10% 급등했죠. 전쟁으로 외국인이 러시아 증시에 투자하기 매우 어려워진 상황에서 (미국의 투자금지 조치) 이 정도 급등세는 이례적입니다.
홍콩 증시에 상장돼 거래가 자유로운 러시아 알루미늄 제련 기업 루살(Rusal) 주가는 한 달 만에 52%나 뛰었습니다. 미국이 곧 러시아 제재를 해제할 거란 기대감이 반영된 거죠. 러시아 루블화 가치 역시 올해 들어 달러 대비로 25% 넘게 올랐습니다.
침략국 러시아 자산으로 금융시장 투자자들이 몰리는 현실이 왠지 씁쓸하기도 한데요. 본래 투자의 세계란 냉정한 법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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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상장된 러시아 기업 루살의 2025년 주가 추이. 구글 금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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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알아두셔야 할 게, 3년 넘게 계속되는 전쟁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경제는 상당히 잘나가고 있단 점입니다. 물론 처음 전쟁이 막 발발했을 땐 절벽으로 떨어졌죠. 러시아는 대대적인 경제 제재 융단폭격을 맞았고요. 주식시장은 한동안 문을 닫았고, 루블화는 폭락했고, 국가신용등급은 급락하고, 예금자들은 달러를 얻기 위해 은행에 줄을 섰고, 외국 기업은 줄줄이 빠져나갔습니다. 당시 IMF(국제통화기금)가 2022년 러시아 GDP의 8.5% 감소를 전망했을 정도였죠.
하지만 실제로는? 러시아 경제는 2022년에 1.2% 소폭 하락에 그쳤고요. 2023년엔 3.6%, 2024년엔 4.1%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모두의 예측이 빗나갔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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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러시아 경제는 어떻게 금세 다시 성장 궤도를 타게 됐을까요. 한마디로 ‘군사적 케인즈주의’ 효과입니다.
케인즈주의란 정부가 공공지출을 늘려서 소비를 촉진하는 방식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거죠. 군사적 케인스주의는 군사 지출을 늘려서 성장을 촉진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게 나치 독일입니다. 나치 독일은 1933~1937년 약 55% 실질 GDP 성장을 누리며 경제적 번영을 이뤘는데요. 나치 정부가 대대적인 군사력 확장에 나선 게 그 원동력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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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8일 러시아 국방부가 배포한 사진.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 군인들이 발포 준비를 하고 있다. 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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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길어지면서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GDP의 약 3%를 차지했던 국방비는 이제 거의 7%로 불어났습니다. 국방비를 대대적으로 쏟아붓고 있단 뜻이죠. 전쟁 물자 생산을 위해 방산기업은 24시간 3교대로 정신없이 돌아갑니다. 전쟁으로 일할 사람 구하기 어려워진 무기 공장들이 월급 인상을 주도하면서 전반적인 급여 수준이 크게 올랐고요. 지난해 12월 기준 러시아 근로자의 급여 상승률은 전년 대비 21.9%나 됐습니다. 16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었죠.
근로자뿐 아니라, 전선으로 나가는 군인들도 거액을 받습니다. 러시아 남서부 사마라주는 올해 초 지원병 계약 일시금을 80% 인상한 360만 루블(약 5800만원)로 책정했는데요. 러시아 평균 연봉(약 106만 루블)의 3배 넘는 금액입니다. 푸틴 정권에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각 주 정부가 경쟁적으로 계약금을 높인 결과이죠.
임금이 이렇게 빠르게 오르다 보니 소비자들의 낙관론은 커집니다. 여론조사 기관 레바다센터에 따르면 소비자 신뢰지수는 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했고요. 러시아의 가계소비는 1년 전보다 6% 늘었습니다. 전쟁이 만들어낸 독특한 소득 주도 성장인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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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부터 2025년 2월까지 러시아의 소비자신뢰지수 추이. 지난해부터 줄곧 90선 안팎으로 높은 수준에 머물러있다. 그만큼 자신의 재정상황과 국가경제의 앞날에 대해 긍정적인 응답이 많다는 뜻. 레바다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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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성장률을 끌어올린 또 다른 요인은 외국기업 대탈출로 인한 ‘국산화’ 효과입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200개 넘는 다국적 기업이 러시아를 떠나거나 운영을 중단했죠. 현대차를 비롯한 자동차 제조업이 썰물처럼 빠져나갔고요. 골드만삭스·ING·비자·마스터카드 같은 금융회사, 스타벅스·맥도날드·코카콜라·자라·애플 같은 소비자 관련 기업도 줄줄이 철수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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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판매 중인 '도브리 콜라'. 코카콜라가 철수한 뒤 러시아에서 제조한 대체콜라인 도브리 콜라가 인기를 끌고 있다. 런던 법인인 코카콜라HBC 자회사가 러시아에서 만든 일종의 짝퉁 코카콜라이다. 수입 대체의 대표적인 사례다. 도브리 콜라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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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대량 이탈이 역설적으로 러시아 기업엔 기회가 됐습니다. 외국기업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러시아 기업의 이익은 크게 늘어났고요. 다국적 기업이라면 해외로 상당 부분 빠져나갔을 세금과 배당금이 러시아 내에 남는 결과로 이어진 거죠.
무엇보다 러시아 기업의 ‘투자 붐’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 러시아 기업의 투자는 14조4000억 루블(238조원). 전년 동기보다 10% 늘어났고, 1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요. 제재로 인해 주요 은행들이 부유한 러시아인들과의 거래를 끊으면서 예전처럼 해외 자산에 투자하기가 어려워졌거든요. 그래서 예전 같으면 해외로 빠져나갔을 돈이 국내에 재투자되는 겁니다. 이 역시 서방 제재가 가져온 예상 밖의 결과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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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우크라이나 곳곳은 폐허가 되고, 지금도 사람들이 죽고 있는데. 침략국인 러시아에선 근로자도, 기업도 모두 돈을 더 잘 벌게 됐다니. 씁쓸하다 못해 허탈하다고요? 그런데 아직 결말은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러시아 경제를 떠받쳐온 군사적 케인스주의가 이제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입니다.
케인스주의는 경제에 여유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정책인데요. 러시아의 가용 자원이 동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재정 여력은 아직까진 좀 남아있긴 한데요. 그보다 먼저 바닥난 건 인적자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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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 용사, 전선에 나간 군인의 아내, 자원봉사자들이 2025년 2월 2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카잔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군인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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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전쟁 이전에도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나라였습니다. 부족한 노동력을 이민자들로 메워왔는데요. 2022년 전쟁이 일어나자, 러시아에선 대탈출이 벌어졌습니다. 이민자들은 물론 러시아인 중 IT나 금융 분야 고숙련 인재들까지, 무려 75만명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거죠. 또 매달 1만~3만명의 청년이 군에 입대하고 있습니다. 일손이 부족해 학생과 은퇴자까지 채용될 정도로 노동시장은 완전고용 상태(실업률 2.4%)이죠. 러시아 중앙은행 분석대로 러시아 전역에서 “전문가와 저숙련 노동자 모두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입니다. 한 에너지 기업 전직 임원은 FT에 이렇게 말하죠. “기업의 용접공들이 엄청난 급여를 받으며 무기 공장으로 가버립니다. 고용할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돈을 버나요?”
한동안 푸틴 대통령은 “실업률이 역대 최저”라며 자랑스러워했는데요.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이 너무 장기간 이어지면서 이젠 물가가 심상찮습니다. 2024년 12월 러시아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률은 9.5%. 특히 지난해 식료품 가격이 급등해서, 감자는 92%, 양파 48%, 오이 28.5%, 버터는 36%나 뛰었습니다. 오죽하면 지난해 11월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선 복면을 쓴 강도가 가게에서 버터 20㎏를 훔쳐 달아나는 사건까지 발생했죠. 지난해 12월이 되자 푸틴 대통령도 인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할 시그널”로 지목했습니다.
물가를 잡기 위한 방법으론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군사 지출을 줄이는 것. 기록적으로 늘어난 국방 지출(2025년 13조5000억 루피)이 이미 러시아 경제 용량을 한참 초과한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이건 지금으로선 푸틴 대통령이 선택할 리 없고요. 대신 러시아 중앙은행이 움직였습니다.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19%에서 21%로 높였죠. 200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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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추이. 지난해 10월 19%에서 21%로 인상한 뒤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잠시 20%로 인상했던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그만큼 최근의 인플레이션을 심각하게 보고 있단 뜻이다. 트레이딩이코노믹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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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의 이런 움직임이 효과를 발휘할까요. 글쎄요. 이후에도 물가상승률은 점점 더 높아지기만 하는데요(1월 9.9%). 이러다 물가는 못 잡고 괜히 기업 이자 부담만 불어나서 경제에 타격을 입하는 건 아닐까요. 경제를 과열시킨 건 군사 부문인데, 높은 이자 부담에 시달리는 건 민간 기업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러시아에선 요즘 스태그플레이션(물가급등+경기침체)이 경제계의 큰 화두입니다. 러시아 싱크탱크 CMASF가 중기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된다고 경고했고요, 이게 맞냐 아니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일단 러시아 정부는 올해 1~2% 사이의 완만한 경제성장, 즉 연착륙을 예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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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이룬 경제성장은 원래 오래갈 수가 없는 법입니다. 국가의 미래를 저당 잡기 때문이죠. 전쟁으로 인해 장기적인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과 과학기술, 건강에 대한 투자는 대폭 줄어들었고요. 대신 탱크와 총알을 만들고, 군인을 먹이고 수송하는 생산성 낮은 분야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두뇌 유출과 인구 감소까지. 국가의 성장곡선이 궤도를 심각하게 이탈한 상황입니다. 러시아 경제학자 블라디슬라프 이노젬체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러시아는 현대화로 가는 모든 길을 완전히 차단했습니다. 안정은 있지만 발전은 없습니다.”
즉, 지난 3년은 러시아 경제가 꽤 잘 버텼지만, 이대로 계속 갈 순 없습니다. 아마도 크렘린도 이를 느끼고 있었을 거고요. 바로 그 타이밍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협상이라는 동아줄을 내려준 셈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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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G20 정상회담에서 이야기 나누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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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만약에 이 전쟁이 끝난다면, 그땐 러시아 경제가 어떤 국면을 맞이하게 될까요? 일단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종전이 경기침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전쟁 특수가 끝나면서 무기 공장의 일자리는 줄어들 거고, 실업률도 치솟을 테니까요.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이 불가피합니다. 과열됐던 경제가 정상화하려면 냉각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대신 러시아 경제는 제재에서 드디어 벗어나 한발짝 나아갈 겁니다. 더 많은 석유 달러를 벌어들이고, 진짜 필요한 서방 첨단기술을 사들일 수 있게 되겠죠. 러시아 증시가 들썩거리는 이유일 텐데요. 그런데 러시아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은 도대체 어떻게 될는지. 여전히 많은 물음표가 따라붙습니다. By.딥다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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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대신 스타스 커피를 마시고, 자라 대신 MAAG에서 옷을 사는 러시아인들. 전쟁과 제재라는 악조건에도 금세 적응해버린 러시아 경제가 놀라운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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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이대로 전쟁이 끝나더라도 러시아가 배상 책임을 지게 만들 수 있을까요. 예상보다 너무 잘 나가는 러시아 경제를 들여다보면서 계속 이 생각이 들었는데요.
지금 유럽에서 얘기가 나오는 방안은 제재로 해외 계좌(주로 유럽)에 동결돼있는 러시아의 외화준비금 약 3000억 달러를 우크라이나에 다 주자는 겁니다.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에 발생한 피해액은 약 4000억~5000억 달러(추정). 피해 회복에 상당히 효과적일 걸로 보이는데요.
물론 법적으로 그게 가능한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책임을 지는 정의가 꼭 실현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금요일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진 증시가 좀 안정돼있길 바라며. 안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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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한애란
재미있거나 유익하거나.
읽을 만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23년차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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