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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사라진 쌀 미스터리'. 그 진실은 뭘까. 게티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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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당 4077엔(3만9800원). 17일 일본 농림수산성이 발표한 3월 첫째 주 평균 쌀값입니다. 한국과 비교하면 2.5배가 넘는 수준이죠. 1년 전보다 무려 99.3% 뛴 쌀값으로 요즘 일본이 난리입니다. 급기야 일본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쌀 부족을 이유로 대규모 비축미를 방출해야 했는데요.
도대체 일본은 왜 이리 쌀이 부족해졌을까요. 이상 고온 탓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들어서다, 투기세력이 쌀을 빼돌렸다 등등. 그동안 다양한 요인이 제기되지만, 점점 결론은 하나로 모아집니다. 쌀 생산능력 자체가 쪼그라든 게 문제라는 거죠. ‘쌀은 남아도는 게 문제’라는 기존 상식을 깨는 일본의 쌀 부족 현상을 들여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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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인 쌀을 살 수 없게 된다는 건 어떤 일일까요. 지난해 여름 일본 소비자들은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렸습니다. 슈퍼마켓 매대에서 쌀을 찾기 어렵게 되고, 있더라도 ‘1가족 1봉지로 구매를 제한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던 거죠. 지난해 1~6월 5㎏에 2000~2200엔 수준에 머물던 일본 쌀 소매가격은 8월엔 단숨에 2600엔을 돌파합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 건 2023년의 폭염. 특히 인기 품종인 고시히카리가 유독 더위에 약한 탓에 수확량이 급감했습니다. 여론이 들끓었지만, 당시 일본 농림수산성은 이렇게 장담했죠. “햅쌀이 나오면 품절 현상에서 회복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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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농림수산성이 매주 집계한 1000개 슈퍼마켓의 평균 쌀 판매가격 추이 그래프. 빨간색이 2024년 6월부터 최근까지 가격 그래프다. 지난해 6월 5㎏ 한봉지에 2200엔대였던 쌀값이 가파르게 올라 3월 첫째주엔 4077엔을 기록했다. 1년 전(2045엔)과 비교하면 99.3% 상승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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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웬걸. 햅쌀이 나온 2024년 가을에도 쌀값은 점점 더 오르기만 합니다. 5㎏ 평균가격은 지난해 9월 3000엔을 넘더니 올 1월엔 3600엔을 돌파했고요. 이젠 처음으로 4000엔 선마저 돌파했는데요. 슈퍼마켓에선 5㎏ 한봉지에 5000엔 넘는 가격표도 보입니다. 미친 쌀값이란 말이 절로 나오죠. 일본 언론은 이 쌀값 폭등 사태를 ‘레이와(令和, 일본의 연호)의 쌀소동’이라 칭하는데요. 1918년 쌀값이 300% 넘게 폭등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났던 역사적인 ‘쌀소동’ 사건에 비유한 겁니다.
쌀값 상승은 외식·식품 물가를 줄줄이 끌어올립니다. 스키야(덮밥)와 하마스시(초밥) 같은 외식 체인이 지난해 말 줄줄이 메뉴 가격을 올렸고요. 밥 양을 줄이거나, 공짜로 주던 밥을 유료화하는 식당도 늘었죠. 세븐일레븐 편의점은 주먹밥과 도시락 가격을 인상했고요. 쌀로 만드는 쌀과자·미림·사케 가격도 덩달아 오릅니다.
일본 시장조사업체 제국데이터뱅크가 최근 발표한 ‘2025년 1월 카레라이스 물가’는 396엔(약 3850원). 카레라이스 1인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재료(쌀, 쇠고기, 당근, 양파 등)와 에너지 가격을 계산한 결과인데요. 1년 전보다 79엔이나 늘어,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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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카레라이스 물가의 구성 요소에 대한 설명. 쌀이 158엔, 고기와 야채가 209엔, 카레루 25엔, 수도광열비 4엔이다. 특히 쌀값이 1년 전보다 66엔이나 오른 탓에 전체적으로 79엔 상승했다. 제국데이터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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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쌀값 폭등은 좀 이상합니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2024년 쌀 수확량(679만t)은 전년보다 18만t이나 늘었어요. 그런데 일본 농협 같은 주요 집하업자가 매입한 쌀(1월 말 기준, 221만t)은 전년보다 오히려 23만t이나 감소했죠. 어찌 된 일인지 쌀이 늘었는데(생산), 쌀이 줄었습니다(매입). 있었는데 없어졌어요.
에토 타쿠 농림수산성 장관은 지난달 초 기자회견에서 “어딘가에 쌓인 채 숨겨진 양이 있어서 부족이 발생했다”고 말합니다. 이게 다 쌀값 상승을 노리고 쌀을 빼돌린 투기세력 탓이라는 주장인데요. ‘사라진 쌀의 행방은?’이라는 소설 제목 같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죠.
조직적으로 농촌을 돌아다니며 대규모로 쌀을 사들이는 세력이라도 있는 걸까요? 사실 농산물 값이 뛸 때 중개인들이 창고에 일부러 비축해두는 거야 흔한 일이긴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양은 기껏해야 1만~2만t 정도일 거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죠. 쌀 1만t을 보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연간 1억엔이나 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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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농림수산성 발표대로 수확량이 18만t 늘었는데도 매입량이 23만t 줄어든 게 진짜 맞다면, 무려 41만t의 쌀이 어딘가 숨어있단 건데요. 그게 가능할까요? 참고로 41만t이면 30㎏짜리 쌀 포대를 도쿄돔 부지에 깔았을 때 11m 높이로 쌓입니다.
투기세력이 숨긴 게 아니라면 뭘까요. 설득력 있는 주장은 애당초 18만t 증산 자체가 없었단 겁니다. 지난해 일본의 여름은 기록적으로 더웠고, 많은 농부들이 쌀 수확량이 줄었다고 말하고 있거든요. “정부는 ‘2024년 수확량이 늘었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인들 사이에선 ‘농림수산성 통계가 정확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옵니다.”(대규모 쌀 농장인 ‘오시마 농장’ 대표 오시마 야스시)
“사라진 쌀을 찾아도 절대로 발견되지 않습니다. 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쌀이 없기 때문에, 경쟁이 심해지면서 농협의 집하량이 줄어든 겁니다.”(농업 전문가인 야마시타 카즈히토 캐논글로벌전략연구소 연구주간)
쌀은 많은데 중개업자가 쌀을 대량 빼돌렸을 거란 정부 주장과 지난해 쌀 수확량이 실제론 감소했을 거란 일부 농민과 전문가 주장. 둘 중 뭐가 팩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현재로선 쌀값이 크게 하락할 조짐은 없다는 거죠. 정부의 대대적인 비축미 방출 계획에도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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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3월 10일부터 비축미 입찰을 실시했습니다. 이달 안에 총 21만t 비축미를 풀 거라고 하죠. 일본 정부가 재난이 아니라 쌀이 부족해서 비축미를 방출한 건 사상 처음이고요. 그 물량도 엄청납니다. 그동안 비축미 방출은 동일본 대지진 때 4만t, 구마모토 지진 당시엔 고작 90t에 불과했거든요.
만약 투기세력이 쌀을 잔뜩 쌓아뒀다면, 비축미 방출 계획에 깜짝 놀라 물량을 쏟아내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아직까진 어디서도 그런 신호는 없습니다. 비축미가 쌀값의 가파른 상승세를 멈추게 할진 몰라도, 극적인 가격 하락은 어려울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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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 한 일본 소비자가 '아직 2월인데 쌀이 사라졌다'면서 X에 올린 슈퍼마켓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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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상기후, 전체의 1%에 불과한 외국인 관광객 수요, 실체가 모호한 투기세력. 쌀값 이상급등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런 요인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이제 전문가들은 경제학의 기본 원리로 눈을 돌립니다. 쌀값이 이렇게까지 계속 오르는 건 단순히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뜻 아닐까요.
일본은 1971년부터 50년 넘게 쌀 감산 정책을 시행 중입니다. ‘감반(減反)정책’이라고 부르는데요. 예컨대 정부가 지역별로 감축 목표량을 할당한 뒤, 보조금을 줬고요. 수확량을 높이는 벼 품종개량도 금지했습니다. 2018년 일본 정부는 감반정책 폐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했지만 말뿐이었죠. 지금도 주식(밥)용 쌀 대신 전략작물(밀, 대두, 사료용 쌀)을 재배하는 농가엔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연간 투입 예산만 3000억엔(약 2조9000억원)이 넘죠.
감반정책은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1969년 317만㏊였던 벼 재배면적은 꾸준히 줄어 2023년엔 124만㏊가 됐죠. 쌀 생산량도 1967년 약 1309만t에서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요. 쌀이 남아돌아 골치인 한국도 일본의 성공방식을 따라하고 있습니다. 올해 시행한 ‘벼 재배면적 조정제’가 그런 사례인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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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이후 각국의 쌀 생산량 추이. 붉은 선이 일본이다. 생산량이 가장 많은 맨 위 점선은 베트남. 한국은 나와있지 않다. 캐논글로벌전략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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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본 감반정책엔 허점이 있습니다. 쌀 생산의 낙후한 구조를 바꾸는 데는 실패했단 거죠. 왜 그럴까요. 정부가 쌀 생산량을 억지로 줄이면서 쌀값을 높게 떠받쳐왔기 때문입니다.
벼농사는 기계화돼 밭농사보다 품이 훨씬 적게 들어요. 농사 짓기 편하죠. 그런데 쌀값이 높게 유지되면 영세농가, 특히 다른 소득이 있는 겸업 농가는 어떻게 할까요. '쌀 사먹으려면 비싸니까 농사 짓는 게 낫겠네’라는 생각에 부업 삼아 계속 벼농사에 남습니다. 비료·살충제 가격 빼면 거의 남는 게 없더라도 말이죠. 그 결과 일본 쌀농가 중 재배면적이 1㏊가 안 되는 영세소농 비중이 여전히 52%입니다. 대규모화·법인화·효율화와는 거리가 멀죠.
그리고 농촌에 지역구를 둔 정치인들에겐 이게 오히려 더 좋습니다. 농장이 대형화되는 것보단 영세농가가 많은 게 유권자 머릿수를 늘리고 정치력 키우는 데 효과적이니까요. 농협 역시 영세농가가 많아야 유리합니다. 이들이 모두 비료를 사주고 예금을 해주는 고객이니까요. 이렇게 기득권 세력끼리 쿵짝이 맞으니, 막대한 보조금이 투입되는 쌀 감산 정책은 계속됩니다. 왜 굳이 정책 방향을 바꾸겠어요. 쌀 생산을 늘려서 쌀값이 급락하면 자기네 지지기반이 흔들릴 게 뻔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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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제 벼농사의 생산력이 밑바닥부터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단 점입니다. 일본 벼 재배농가의 평균 연령은 71세로 고령화가 특히 심각한데요. 늙어서 벼농사에서 손 놓는 은퇴 농부들이 급증하는데, 후계자는 없습니다. 누가 이 영세한 산업을 이어 받으려고 하겠어요. 일본 최대의 사케업체 아사히슈초의 히로시 사쿠라이 회장은 블룸버그에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 특히 농림수산성은 벼농사에 대한 희망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소규모 농업은 실행 가능하지 않아요. 대규모 농업으로 나아가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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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7일, 일본 오카야마현 가미모미 마을에서 익어가는 벼. AP 신화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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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근본적인 해법은 쌀 정책의 대전환입니다. 일단 50년 넘게 이어진 쌀 감축 정책은 끝내야하고요. 쌀 생산을 늘려서 가격을 낮추고 대신 기업화를 유도하는 거죠. 그러다 쌀이 남아돌면 어쩌냐고요? 다른 나라로의 수출을 뚫어야죠. 쌀이 남을 땐 수출하다가, 작황이 나쁠 땐 수출 물량을 내수로 돌려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겁니다. 보관비용이 많이 드는 비축보다 수출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너무 진취적인 발상인가요. 사실 이건 농림수산성 출신인 카즈히토 캐논글로벌전략연구소 연구주간의 주장인데요. 그는 사고의 전환을 촉구합니다. “농업도 경제의 일부입니다. 약자라든지, 특별하다고 여기는 발상에선 농업이 발전하지 않아요. 네덜란드가 왜 세계 2위 농산물 수출국으로 발전했느냐. 농업성을 폐지하고 경제성에 통합했기 때문입니다. 높은 기술이 세계 최고로 만든 거죠.”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한국 농업에 대입해도 다를 게 없습니다. 아직 우리에겐 쌀 부족, 쌀값 급등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을 뿐이죠. 일본을 뒤흔든 쌀의 역습은 혹시 한국의 미래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요. By.딥다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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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일본에 다시 인플레이션이 찾아왔다지만, 쌀값이 1년 만에 두배로 뛰다니. 보통 일이 아닌데요.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남의 나라 얘기 같지만은 않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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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농사꾼의 자손이자, 아이 밥해먹이는 엄마로서 일본 쌀값 급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도 비슷한 길을 가는 게 아닐지 솔직히 걱정스러운데요. 이웃나라의 쌀소동, 거기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요. 금요일 다시 찾아뵐게요. 안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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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한애란
재미있거나 유익하거나.
읽을 만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23년차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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