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쿠. 밤 사이 미국 증시가 또. 그래도 심호흡하고 가볼게요. 딥다이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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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년 된 스컨소프 제철소를 구하기 위해 영국 정부가 나섰다. 브리티시 스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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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산업의 발상지, 영국이 마지막 남은 용광로 구출 작전을 벌였습니다. 5년 전 중국 자본으로 넘어갔던 영국 스컨소프 제철소의 두 고로(용광로)가 그 주인공이죠. 중국 경영진이 고로를 폐쇄하려 하자, 영국 정부가 이례적으로 긴급히 나서서 이를 막은 건데요.
어쩌면 37년 만에 스컨소프 제철소가 다시 국유화될지도 모르는 상황. 아니, 고로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뜨거운 이슈가 됐을까요. 왜 이게 중국 탓이란 얘기가 나올까요. 오늘은 영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슈, 스컨소프 제철소를 들여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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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 토요일, 영국 상·하원이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토요일에 영국 의회가 소집된 건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 발발 이래 4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죠. 그만큼 전쟁에 준하는 위기 상황이란 뜻이었습니다.
이날 상·하원이 이례적인 긴급 투표로 통과시킨 건 ‘철강산업법’. 영국 철강회사 브리티시 스틸(British Steel)의 스컨소프 제철소에 대한 통제권을 영국 정부에 주기 위한 비상 입법이었습니다. 브리티시 스틸의 소유주 중국 철강회사 징예(敬业)그룹으로부터 제철소 운영권을 사실상 빼앗아 버린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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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동부 도시 스컨소프에 위치한 브리티시 스틸의 스컨소프 제철소 모습. 철광석 광산이 있던 지역이어서 160년 전부터 제철소가 운영됐다. 하지만 철광석 광산은 문을 닫은 지 오래이고, 스컨소프는 항구와 멀리 떨어져있어서 지금은 제철소를 운영하기에 썩 좋지 않은 위치다. 브리티시 스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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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년 역사를 가진 스컨소프 제철소는 폐쇄 일보 직전에 있었습니다. 2020년 주인이 된 징예그룹이 두 개의 고로를 5월 중 닫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죠. 고로 가동을 위해 필요한 필수원료인 코크스와 철광석 주문도 취소한 상태였습니다. 용광로의 특성상 일단 한번 식어버리면 이를 다시 되살리기란 매우 어렵고 엄청난 비용이 들죠. 이대로 몇주만 두면 용광로 불꽃은 완전히 꺼지고, 제철소에서 일하던 2700명은 실업자가 될 상황이었습니다.
“중국기업이 고로를 굶겨 죽이려고 한다”면서 노조와 여론이 들끓었고요. 결국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나섭니다. “세계 경제 불안정성을 고려할 때 국내 제조업을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총리실 성명)
이번 긴급 입법으로 영국 정부는 고로 폐쇄 작업이 진행되는 걸 막았습니다. 일부 해고됐던 근로자들도 복직시켰고요. 원자재도 정부가 나서서 간신히 확보한 덕분에, 고로 가동도 정상화하게 됐죠. 일단 한고비는 넘겼는데요.
남은 문제는 이 제철소를 어떻게 처리할 거냐는 것. 기본적으로는 다른 민간 투자자를 물색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긴 한데요. 조너선 레이놀즈 상무부 장관은 “국유화도 여전히 가능성 있는 옵션”이라고 말하죠.
브리티시 스틸은 1988년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민영화된 수많은 국영기업(항공·가스·전기·통신·수도 등) 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의 파산 위기와 매각을 거쳐, 돌고 돌아 다시 국유화가 논의되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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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투성이인 데다, 글로벌 경쟁력도 떨어지는 영국 철강산업에 정부가 뛰어든다? 솔직히 별로 합리적이진 않아 보이는데요. 하지만 경제성과 효율성 따위는 무시하는 중요한 논리가 있습니다. 바로 국가 안보이죠.
이번에 폐쇄될 뻔했던 스컨소프 고로 두 개는 ‘퀸베스’와 ‘퀸앤’. 영국 여왕 이름을 딴 이 고로들이 특별한 건 이 나라에 남은 유이한 고로이기 때문입니다.
철강을 제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죠. 하나는 고로(용광로)에 철광석과 코크스(석탄으로 만든 고체연료)를 넣어 만드는 방식, 또 다른 하나는 전기로에 고철(철 폐기물)을 넣고 전기 에너지로 이를 녹여 만드는 방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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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컨소프 제철소엔 원래 총 4개의 고로가 있었다. 이 제철소는 고로 이름을 퀸메리, 퀸빅토리아, 퀸앤, 퀸베스라고 지었다. 영국 여왕들 이름을 딴 것. 이 중 메리와 빅토리아는 오래 전 가동을 멈췄고, 현재는 퀸앤과 퀸베스가 영국에 남은 마지막 고로로 운영되고 있다. 브리티시 스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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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고로를 이용한 철강 제조법은 영국이 원조 격이죠. 코크스 고로를 18세기에 세계 최초로 발명했고, 19세기엔 영국이 전 세계 철강산업을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영국은 세계 5위 철강 생산국이었는데요.
다 옛날얘기죠. 이제 영국은 세계 철강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고작 0.3%에 불과한 철강 소국이고요. 특히 고로는 탄소 배출량이 워낙 많아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영국의 다른 제철소들 역시 환경규제 때문에 고로를 닫고 전기로로 바꾸는 추세였는데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2개 남은 고로가 곧 폐쇄될 거란 소식이 나오자, 평가가 달라집니다. 만약 이것마저 문을 닫는다면 ‘영국이 G7(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 중 유일하게 버진 스틸(Virgin Steel, 고철이 아닌 원석을 재료로 한 강철)을 생산할 능력이 없게 된다’는 논리가 힘을 받게 된 건데요.
품질 좋은 최고의 강철은 전기로가 아닌 고로에서 생산되고, 따라서 고로가 사라지면 군수산업이 수입산에 의존해야 해서 국가안보가 위협받는다. 뭐, 이런 주장입니다. 옥스퍼드대학교 블라드 미크넨코 교수(정치경제학)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국과 같은 NATO의 주요 군사 국가가 버진 스틸을 생산하지 않는 건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가뜩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으로 유럽은 안보 문제에 예민한 상황. 이런 안보 논리는 꽤 설득력을 발휘하죠. 최근 여론조사에서 영국 국민 과반이 제철소 국유화에 찬성했다는데요.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두고 “트럼프의 예상치 못한 파장”이라며 이렇게 전합니다. “영국의 보수층과 기업 리더조차 국유화를 환영하는 이상한 사태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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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브리시티 스틸을 국유화하는 것을 지지하느냐'는 설문조사에 대한 응답 결과. 지지한다는 응답이 57%를 차지했다. 유고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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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죠. 정말 고로가 없으면 영국의 안보가 위협받게 될까요. 이코노미스트의 분석은 좀 다릅니다. 이미 영국은 잠수함이나 군함을 만드는 데 쓰는 철강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죠. 사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무기 제조용 철강을 수입해 썼습니다.
또 고도 가동에 필요한 철광석과 코크스 역시 100% 수입에 의존하죠. 영국은 수십 년 전에 이미 철광석 광산이 문을 닫았고요. 코크스 공장도 모두 가동을 중단했거든요. 어차피 고로가 있든 없든, 철강의 자급자족이란 불가능합니다.
또 전기로로 만든 철강은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도 옛날얘기입니다. 기술 발전으로 전기로에서도 고품질 철강을 생산할 수 있게 됐죠. 예컨대 항공기 랜딩 기어에 쓰이는 고급 강철은 리버티 스틸의 전기로에서 생산됩니다. 영국은 해마다 나오는 700만t 넘는 고철 대부분을 튀르키예 같은 외국으로 수출하는데요. 그걸 영국 내 전기로에서 녹여 재활용한다면 오히려 자급자족이 가능해지죠.
따져보면 영국인의 안보의식을 자극하는 ‘고로 구하기’ 논리는 약간 시대착오적입니다. 특히 스컨소프의 두 고로가 수명이 거의 다했다는 걸 감안하면 더 그렇죠. 어차피 몇 년 안에 고로를 폐쇄하고 전기로 같은 새로운 설비로 바꿔야 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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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스컨소프 제철소의 퀸앤 고로 건설현장에서 BBC 기자(맨 오른쪽)가 취재하는 모습. 퀸앤 고로는 여전히 가동 중이지만, 수명이 거의 다 됐다는 게 정설이다. 브리티시 스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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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영국 정부가 스컨소프 제철소의 완전한 국유화를 추진한다면? 그 비용이 40억~50억 파운드(7.5조~9.5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는데요. 그래서 이코노미스트는 냉정하게 평가합니다. “부실 산업을 지원하는 것이 영국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리석습니다.”
하지만 스컨소프는 제철소 도시입니다. 78세인 지역 주민은 언론 인터뷰에서 “만약 제철소가 망하면 이곳은 망할 것”이라고 말하죠. 5월 지방선거를 앞둔 영국 정치권이 이 지역 민심을 외면할 순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너무나 중요한 이슈인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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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컨소프 제철소 문제는 영국인들의 위기의식을 자극합니다. 제철소 폐쇄를 주도하는 주인이 바로 중국기업이기 때문에 더 그렇죠. ‘중국이 영국 철강산업을 고사시키려 한다’는 위기감. 그게 바로 영국의 여론을 고조시킨 큰 이유인데요.
영국 정부는 은근히 중국을 탓합니다. 레이놀즈 상무부 장관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죠. “우리가 실제로 중국과 협력할 수 있는 분야와 없는 분야가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중국 기업을 우리 철강 분야에 끌어들이지 않을 겁니다.”
언론은 훨씬 노골적으로 중국을 비난합니다. 화제가 된 텔레그래프 칼럼의 한 토막을 소개해 드릴게요.
“중국 기업 징예가 이 모든 일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다. 영국의 고로를 폐쇄하면 우리가 중국에서 슬래브 강판을 구매해야 한다는 걸 징예는 알고 있죠. 이는 우연이 아닙니다. 모두 계획의 일부입니다. 징예는 전직 중국 공산당 간부가 운영하고 있고, 이제 우리가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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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운데)가 브리티시 스틸 노동자들과 만나고 있다. 브리티시 스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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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기업이 중국 공산당과 짜고, 중국산 철강 수출을 늘리기 위해 일부러 영국의 고로를 폐쇄하려 한다. 이런 식의 음모론을 제기한 건데요. 물론 구체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이에 대해 징예그룹 측은 스컨소프 제철소에 인수 뒤 12억 파운드(2조2700억원)를 투자했지만 하루 70만 파운드(약 13억3000만원)씩 손실을 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단지 고로가 “더 이상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아서” 폐쇄를 결정했단 주장이죠.
뭐가 진실이냐고요?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하지만 철강 과잉 공급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으로선 수출이 절실한 건 사실이고요. 영국의 높은 에너지 비용과 환경 규제, 거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에 대한 25% 관세 부과까지. 스컨소프 제철소의 생존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한둘이 아닌 것도 맞습니다. 아마도 그 중간 어디쯤 진실이 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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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컨소프 제철소 국유화가 현실이 된다면 이는 영국 산업정책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브리티시 스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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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컨소프 제철소 사건은 경제 흐름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미 2020년 브렉시트(Brexit)를 계기로 영국은 탈세계화, 신고립주의로 나아갔고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은 경제적 민족주의를 더 부추기고 있죠. 점점 커져가는 유럽의 반이민 정서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경계심과 일맥상통합니다. 예전엔 옳았던 것(자유무역·민영화·세계화)이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는데요.
동시에 영국이 처한 딜레마도 드러내 줍니다. 영국은 이대로 중국과의 사이가 틀어져도 괜찮을까요? 트럼프의 미국을 상대하기 위해 한동안 영국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말이죠. 또 제철소를 국유화할 수 있다면 다른 황폐해진 기간산업(수도·전력·철도·정유 등)도 정부가 구하러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 어디까지가 납세자 부담이 되는 게 맞을까요. 영국 철강산업의 비용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 탈탄소 환경 정책, 이제라도 재검토해야 하는 걸까요?
계획 없이 갑작스레 제철소를 떠안게 된 영국 정부. 워낙 엉겁결에 벌어진 일이라, 이제부터 여러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야 하는데요. 어쩌면 스컨소프 제철소는 21세기 영국 제조업이 처한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By.딥다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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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US스틸을 일본기업에 파느냐 마느냐를 두고 시끄러운데(딥다이브 US스틸 편 참고), 영국에선 중국에 팔린 브리티시 스틸이 뜨거운 이슈입니다. 안보 때문이든, 경제 때문이든, 정치 때문이든. 철강산업이 갖는 상징성과 중요성이 남다르구나 싶네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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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업은 우리 역사의 자랑입니다."
스컨소프 제철소와 관련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렇게 말했죠.
아마도 이 오래된 제철소가 산업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광스런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과연 우리나라에선 어떤 산업이 그런 대우를 받게 될까요.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괜히 혼자 상상을 해봤습니다.
어쩌면 남의 나라 일엔 냉정하게 굴면서도(안보는 무슨, 다 정치야!)
그게 내 나라 일이 된다면 훨씬 감정적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봄비 내리는 화요일.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저는 금요일에 다시 올게요.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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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한애란
재미있거나 유익하거나.
읽을 만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23년차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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